top of page
아오미네다이키생일합작_whitker_청도청.png
[ 아오미네 다이키 생일 합작_모띠챤_도청도 ].png

 

 

 

HAPPY BIRTHDAY TO CHILDHOOD FRIEND

 

연분홍색 샤프펜슬이 종이 위 허공을 헤매고 있었다. 진학 희망 고등학교라는 단어 옆에 쓸 학교가 딱히 없어서 샤프를 종이에 댈 수 없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쓰고자 하는 학교가 너무도 명확했기에 머뭇거림은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모모이는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귀 뒤로 꽂았다. 앞에서 종이를 어서 제출하라는 선생님의 재촉이 들려왔다. 뒷자리에서 종이 뭉치가 어깨 너머로 넘어오자, 모모이는 눈을 한 번 꾹 감고는 손을 움직였다. 흑연이 종이 위에 급히 휘갈겨졌고, 빈 곳이 채워진 모모이의 진학조사서는 종이 뭉치 속에 끼어 선생님의 손 안으로 들어갔다.

오랜 고민 끝에 내린 시간에 구애받았던 선택은 최선이 아니라 어쩌면 습관과 편견의 연속일지도 몰랐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결정에 대한 후회가 스멀스멀 피어오르자 모모이는 고개를 좌우로 내저었다. 분명히 최선의 선택이야. 분석도 했고, 여자의 감이 그렇게 말하는 걸.

 

“다이쨩은 아무래도 혼자 둘 수 없었어.”

“뭐라는 거야, 바보가. 그냥 테츠네 학교로 가지 그랬냐.”

 

모모이는 작년에 했던 선택에 대한 후회가 다시금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습관과 편견. 다섯 손가락만으로 나이를 셀 수 있었던 때부터 늘 옆에 있었던 소꿉친구의 곁을 떠나는 것은 아무래도 마음이 불편했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과는 달리 아오미네 다이키는 혼자서도 잘 지낼 수 있는 사람일지도 몰랐다. 아니, 분명 잘 지낼 사람이다. 그렇다면 아오미네의 제안대로 자신의 사랑을 위해 세이린에 진학하는 것이 나았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내가 다이쨩보다 누나니까. 다이쨩을 챙겨줘야지.”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부정적인 생각들을 외면하고 생크림 케이크 위에 올라간 딸기를 포크로 찍었다. 상큼함이 입안에 퍼지자 아까까지 머릿속에 맴돌던 생각들은 간데없고 행복함만이 느껴졌다. 손으로 볼을 감싼 채 입안에서 녹아 없어져가는 행복을 만끽하고 있는 모모이와는 달리 아오미네는 부루퉁한 표정이었다.

 

“누나는 무슨. 고작 3개월 먼저 태어났잖아.”

“매년 말하지만 119일이야. 3개월보다는 4개월에 가깝고, 그 기간 동안은 내가 다이쨩보다 나이가 많은 건 사실이야. 그리고 내일부터 그 119일이 시작하지.”

 

모모이는 아오미네보다 숫자와 논리에 강했다. 여느 때와 같이 할 말을 찾지 못한 아오미네는 얼굴을 찌푸린 채 제 몫의 케이크에 애꿎은 화풀이를 했다. 점점 형체를 잃어가는 케이크를 보며 모모이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 때의 감은 틀리지 않았다. 쿠로코였다면 애저녁에 제 나름의 논리로 받아쳤을 테지만 아직까지 이렇다 할 말을 못하고 있는 모모이보다 119일 어린 소꿉친구는 역시 혼자 둘 수 없는 사람이었다.

 

아오미네는 언제나 제멋대로인 사람이지만, 일 년 중 이 119일 동안은 아오미네를 다루는 것이 나머지 246일보다 조금 더 수월했다. 훈련을 빼먹고 옥상에서 낮잠을 자는 아오미네를 체육관으로 떠밀 때, 누나 말 안 들을 거야? 라는 한 마디면 충분했기 때문이었다. 누나라는 단어 하나에 아오미네는 인상을 쓴 채 군말 없이 체육관으로 향했다. 내 생일만 되어봐라. 실내화를 직직 끌며 걸음을 옮기는 아오미네의 생각을 아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렇기에 모모이는 제한된 날들을 더욱더 효율적으로 이용했다.

 

D-108.

“다이쨩, 연습.”

“알았다고.”

 

D-62.

“기말고사 기간이니까 이거 꼭 공부해. 시험에 나올 거야.”

“싫은데.”

“이따가 다이쨩 집에 갈게.”

“싫다니까.”

“누나 말 들어야지?”

 

D-37.

“방학인데 뭐 해?”

“낮잠.”

“나 쇼핑 갈 건데 같이 갈래?”

“햄버거 사 줘.”

 

D-15.

“다이쨩, 덥지 않아?”

“더워. 시원한 거 뭐 없나?”

“그래서 내가 팥빙수를 만들었는데 먹을래?”

“…아니.”

“먹을래?”

“…….”

 

농구 연습, 학교 공부, 쇼핑 동행부터 요리 시식까지. 이 모든 일을 하는 동안 소꿉친구의 미간은 초지일관 찌푸려져 있었고, 튼튼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그 아오미네 다이키가 이유 모를 일로 아파서 앓아 누운 일도 한 번 있었지만 아오미네는 전반적으로 별다른 불만 없이 모모이가 부르는 대로 어울려 주었다. 119일이 영원히 반복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런 생각이 무색하게 시간은 흐르는 법이다. 봄은 여름으로, 교복 셔츠는 반팔로, 5월은 8월로 바뀐다. 그리고 8월 31일도 다가오기 마련이다. 길었던 여름방학의 마지막 날은 5월 초의 기념일처럼 딸기쇼트케이크를 앞에 둔 채였다.

모모이는 눈썹을 한껏 늘어뜨린 채 포크를 입에 물었다. 달콤한 생크림도 야속한 시간의 흐름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주지 못했다. 천천히 말을 꺼내는 모모이의 말투에는 아쉬움이 뚝뚝 흐르고 있었다.

 

“누나 노릇 하는 것도 오늘로 끝이네.”

“언제부터 누나 노릇을 했다고.”

“다이쨩 챙기는 게 누나 노릇이지. 4개월 동안 다이쨩이 잘 따라줘서 얼마나 좋았다고. 평소에도 이렇게 농구 연습하고, 공부도 하고 하면 얼마나 좋을까.”

“연습은 안 해도 날 이길 녀석은 없는 데다 공부 같은 건 관심 없어.”

“이거 봐. 다이쨩은 항상 이렇게 비뚤게 말하고, 늘 도망쳐 버리는데 내가 누나인 동안은 잘 따라줬는걸.”

 

모모이는 입술을 삐죽이며 4개월 전의 아오미네처럼 딸기쇼트케이크를 헤집다가 케이크를 작게 떠서 한 입 물었다. 처진 눈썹은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았다. 한 술 더 떠서 모모이의 몸 전체가 눈썹마냥 축 처졌다.

 

“사츠키.”

 

보다 못한 아오미네가 모모이를 부르자, 언젠가 쿠로코와 같은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않는 다는 것을 실제로 확인했던 날만큼이나 시무룩해져 있는 모모이는 대답 없이 아오미네를 쳐다보았다. 한 손으로는 턱을 괸 채 딸기가 꽂힌 포크를 들고 있던 아오미네는 모모이의 입 속으로 딸기를 밀어 넣었다. 입으로 다가오는 딸기는 습관대로 받아먹었지만, 쇼트케이크에 딱 하나 올라가 있는 온전한 딸기를 자기한테 양보해준 아오미네의 의중은 알 수 없었다.

 

“딱히 네가 누나라서 3개월, 아니 119일 동안 네가 하자고 한 대로 한 거 아니야.”

“언제라도 네 말은 듣는다고. 하기 싫을 때는 빼고.”

“그러니까 오늘이 지나도 달라지는 건 없어. 연습도 하고, 번화가에 나가는 것도 어울려 줄게. 하기 싫을 때는 빼고.”

 

입 속의 딸기가 상큼해졌다. 소꿉친구보다 더 논리적인 모모이의 머릿속에서는 아오미네가 횡설수설 늘어놓는 말들이 어린이용 직소 퍼즐을 푸는 것처럼 쉽게 제자리를 찾아갔다. 짧은 몇 마디로 끝날 말을 아오미네는 같은 표현을 여러 번 반복해가며 풀어놓았다. 일 분을 넘게 이어지는 장황한 문장들이 가리키는 뜻은 하나였다.

 

‘아오미네 다이키는 내킬 때에 모모이 사츠키의 말을 따른다.’

 

내킬 때라는 단서 조항이 문제라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오미네는 여전히 말을 늘어놓다가 더 이상 이렇다 할 표현을 찾지 못하자 입을 다물어 버렸다. 그새 모모이의 축 처져있던 상체는 테이블을 지지대 삼아 아오미네 쪽으로 쏠려있었다. 시무룩했던 얼굴은 어느새 눈을 반짝거리며 다음 말을 기대하는 표정이 되어 있었다.

 

“그 다음은?”

“뭐가?”

“계속 말해줘. 아직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걸?”

똑똑한 소꿉친구가 얼굴 가득 웃음을 띠며 하는 말이 거짓이라는 것은 한 눈에도 알 수 있었다. 투명하게 보이는 모모이의 의도에 아오미네는 한 손을 뻗어 모모이의 얼굴을 덮어 반짝이는 눈빛을 가렸다. 갑작스러운 어둠에 모모이는 황급히 아오미네의 손을 잡아 떼어내었고, 잠깐의 어둠은 기대감 가득한 눈을 감길 수는 없었다. 대신 아오미네는 모모이에게 붙잡히지 않은 나머지 한 손으로 제 얼굴을 가렸다. 아오미네의 시야에서 모모이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반짝이는 시선이 덮인 손등으로 꽂히고 있음은 분명했다.

눈을 감아버림으로써 다른 곳으로 사라질 수 있는 게 아닌 이상, 모모이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아오미네는 깊은 한숨으로 심호흡을 한 뒤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상관없어.”

“크게 말해줘.”

“아, 젠장. 네가 딱히 나이가 많든 적든 상관없다고.”

 

모모이는 고개를 옆으로 갸울였다. 생각했던 답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정답이 아니냐고 하면 그렇지도 않았고, 오답이라고 하기에는 핵심은 아니었다. 모모이의 애매한 반응에 아오미네는 마른세수를 두어 번 했다. 알아듣기에 충분히 큰 목소리가 양 손에 막혀 울리듯 퍼져나갔다.

 

“네가 하는 말이면 무조건 맞는 말일 테니까 네 나이가 많든 적든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여태 네가 하라는 대로 해서 잘못된 적은 없고, 그건 네가 몇 살이든 다르지 않을 거야.”

 

4개월 어린 소꿉친구는 가끔 이렇게 놀라운 말을 할 때가 있다. 모모이는 마음 깊은 곳에서 차오르는 감정을 애써 다스리며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입가의 근육이 놀랐는지 자꾸 하늘 위로 올라가려고 했다. 결국 약간의 떨림이 남은 목소리로 119일만에 같은 나이를 맞은 친구를 축하할 수밖에 없었지만, 진심만이 담긴 축하를 건넸다.

 

“생일 축하해, 다이쨩. 앞으로도 잘 부탁해.”

글오트밀.png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