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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주 금요일은 타지 않는 쓰레기를 버리는 날이었다. 한 달에 두 번, 정해진 날짜. 저번에 늦잠을 자다 놓쳤기 때문에 이번엔 꼭 내놓으려고 했다. 혹시 까먹을까 봉투에 묶어 눈에 잘 띄는 신발장에 두었다. 그런데 그 쓰레기를, 도저히 버릴 수 있을거란 확신이 들지 않았다. 졸린 눈을 비비며 시계를 봐도 날이 밝아 수거차가 오려면 한참이나 더 있어야 했다. 얼어 뒤지겠네, 봄은 언제 와. 겨울밤의 까만 도화지 위로 긴 한숨이 아지랑이를 그리며 흩어졌다.

 

 

타지 않는 쓰레기의 사연

w. 당트                   

 

 

새벽 4시. 아직 게이트도 열리지 않은 지하철역. 가부키초의 사나운 밤을 헤치고 그림자 아래 드러난 남자는 잿빛 머리에 잿빛 양복을 입고 있었다. 나름 호스트라는 직업에 걸맞게 술과 화장품 냄새가 엉망으로 섞인 채였다. 그는 비틀거리며 훌쩍 바리케이트를 뛰어넘으려다, 그만 착지에서 무릎이 꺾여버리는 바람에 결국 한 바퀴 뒹굴었다. 윽, 작은 신음을 내뱉고 일어선 남자는 어기적거리며 페인트칠이 벗겨진 의자에 앉았다.

 

불꺼진 광고판의 까만 유리에 비치는 제 모습에 헛웃음이 흘렸다. 옷도 꾀죄죄한데 얼굴도 엉망이었다. 비단 바닥에 굴렀기 때문이 아니었다. 마지막 손님의 배웅길, 그녀의 남편과 마주쳤기 때문이다. 뒷골목에서 조금 치고 박다가 보내주겠거니 했는데 생각보다 엄청 맞아버렸다. 기절한 척 쓰레기봉투 위에 누워있으니 손님은 남자를 데리고 두려운 듯 빨리 가자며 재촉했다. 남자는 발치에 침을 퉤 뱉고는 떠났다.

 

‘쓰레기 같은 새끼.’

 

언 손으로 품을 뒤져 담배를 찾았다. 어디서 떨어뜨렸는지, 돗대까지 펴고 새로 사지 않았던건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어쩌면 자기도 모르게 끊었던 걸지도. 으으, 지겨운 신음을 내며 딱딱한 의자에 머리를 기대고 굳은 몸을 소금쟁이처럼 쭉 폈다. 웅크린 근육은 여전히 뭉쳐있었지만. 몸의 어딘가 홧홧해지는 곳으로부터 눈을 감자 귓가에 지하철 소리가 들렸다.

 

중학교는 집에서 좀 멀리 떨어져 있었다. 이사는 하지 않았다. 엄마의 직장도, 형의 학교도 지금이 더 가깝다는 이유였지만 테이코가 명문이라 주변 집값이 말도 안 되게 비싸다는 게 제일 컸다. 자전거로는 30분, 걸어서 45분 정도면 대충 도착했다. 지하철은 15분이었나. 처음엔 지각이라던가, 나름 신경을 써서 지하철을 타고 다녔지만 3학년이 되자 늦든 말든 수업을 듣지 않았기에 걸어다녔다. 뭐, 어차피 중간에 다른 길로 새서 놀러갔으니까. 중요한 건 쓰레기도 처음부터 쓰레기는 아니었단 소리다.

 

여느 아이들처럼 장난 많이 치고, 공부에 관심 없고, 스포츠를 좋아했다. 본격적으로 농구부에 들어가면서부터는 나름 열심히 했던 것도 같다. 그것도 그럴게, 훗날 기적의 세대가 나왔던 강호였고, 나는 그들과 같은 시기를 보냈으니까. 까놓고 말해 말이 좋아 동기지, 사실 발판에 지나지 않았다. 나름 별종이었던 나는 티도 안 날정도로 하나하나 이상한 놈들이었다.

그중 제일은 누가 뭐래도 다이키였다. 아오미네 다이키. 용한 놈이었다. 재능이란 건 대단한 거였다. ‘기적’이라는 이름이 어울릴 만 했다. 베끼고 뺏는 게 특기였던 나조차 감히 그럴 수가 없더라. 감히, 너는 내게 그런 놈이었고 너의 주변엔 그런 놈들이 수두룩했다. 그래서 그 속에서 변해가는 널 보면서도 빼내 올 수가 없었다. 이미 그 때 넌 구름 위에 있었고 난 한낱 쓰레기가 되어있었기 때문에.

 

내가 널 붙잡아야 할 이유 따위 몰랐다. 그냥 넌 신기했고, 신기하니까 조금 더 신기한 채로 남아있어 줬으면 하는 마음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도 이제와 생각해보면 그러지 말 걸 그랬다. 아카시가 뭐라고하든 농구부에 구질구질하게 남아있을 걸 그랬고, 쓰레기 짓도 좀 적당히 할 걸 그랬고, 이 눈꺼풀 안에 뒷모습이나마 너를 더 오래 담아둘 걸 그랬다. 이 또한 이유는 모르겠다.

 

중학교 때 잠깐 농구 같이하고, 고등학교 때 한 게임 붙은 게 다였던 너다. 그런 너를 가끔 문득 떠올리고 마는 것은 아마 소각장에서 운동화를 태우던 날, 네가 왔기 때문일 것이다. 푸른 새벽을 등지고 귀신처럼 다가와 물었다.

 

‘진짜 그만 둘 거냐.’

 

대답하지 않았다. 나도 그만둘까, 하는 너의 심드렁한 물음이 내게는 들렸기 때문이었다. 응 이라고도 아니라고도 할 수 없었다. 농구를 그만둔 너는 결코 행복해질 수 없을 터였다. 내가 가진 상실감과 네가 얻게 될 상실감의 차이는 얼음 한 알과 빙하만큼이나 어마어마할 테니까. 그렇다고 농구를 계속하라며 응원 할 수도 없었다. 더 이상 나는 같은 팀원으로 너의 곁에 설 수 없으니까. 너와 같은 유니폼을 입고, 같은 코트에 서게 될 모든 이들에게 짜증이 일었다.

그래서 나는 꽤나 심술궂고 유치하게 답했다.

 

‘나야 타지 않는 쓰레기라 쳐도 버릴 수는 있는데. 넌 대형 쓰레기니까 그냥 계속해. 괜한 뻘짓 말고.’

 

대화라 불릴 정도로 제대로 말을 주고받은 건 아마 그 때가 마지막이었을 거다. 고등학교 때는 주먹질이 말 대신이었으니까. 그 날의 농구화는 버렸는지, 태웠는지. 타지 않고 벽장 구석에 처박혀 있는지.

 

그 이후로 가끔. 너를 떠올린다. 미국에서 잘 지낸다는 너의 뉴스를 본다.

 

 

 

몸이 추위에 굳어지는 게 느껴졌다. 마지막 손님이 말했다. 쇼군을, 이 두 눈꺼풀 안에 가두고 싶다고. 나도 그랬다. 너무 소중하고 아쉬워서 가두고 싶었지만. 눈을 감은 곳에는 어둠 밖에 없어서. 차마 욕심 낼 수가 없었다. 하늘이 저렇게 높고 땅이 이렇게 넓은데. 뒷모습을 눈에 담는 것조차 할 수 없었다. 모자라고 멍청한 놈. 그런 놈이 호스트가 되어 뒷골목에 자리를 잡은 건 제 자리를 알아서 찾아간 것일지도 모르겠다. 태어나 제일 잘 한 일 일지도.

 

나는 지금 테이코로 가는 지하철을 기다린다.

만약 내가 타지 않는 쓰레기가 아니라 타는 쓰레기였으면.

적어도 재활용이 가능한 놈이었다면.

그렇게 농구부를 나가지 않아도 되었을까.

소각장에서 농구를 그만두는 건 아니니 언젠가 한 판 붙자고 할 수 있었을까.

어쩌면 지금 미국 어딘가 있을 너의 곁에 있지는 않았을까.

 

푸른 하늘이 잿빛 거리를 밝혀나갔다.

기침이 났다. 배가 찌르르 울렸다.

지하철 역사의 방송이 켜졌다.

아까 손님의 남자가 찌른 부분에서 울컥, 무언가 흘러나왔다.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어느 곳에도. 빗물에 젖은 박스처럼 축 늘어지기만 했다.

흐릿한 시야, 기분 나쁜 찝찝함.

옷이 식은땀에 척척히 젖어있었다.

예민해진 목덜미에서 등줄기로 섬찟함이 흘렀다.

내 몸이 내 몸 같지 않은 낯섦에 온몸의 솜털이 곤두섰다.

발치에 고인 웅덩이에서 비린내가 올라왔다.

이제야 가려고 마음 먹었는데. 기껏 타는 쓰레기가 되어주려 했더니만.

소각장으로 가는 길이 이다지도 멀다니.

 

눈앞이 번졌다.

고개가 자꾸 아래로 떨어졌다.

끝까지 내 인생 참 쓰레기 같았다.

그것도 타지 않는 쓰레기.

그래도 말해주고 싶었는데.

너는 쓰레기 같은 게 아니었다고.

 

잿빛으로 가라앉은 내 인생,

유일하게 푸르렀던 봄이었다고.

 

 

 

<NBA 이달의 농구선수 - 아오미네 다이키 인터뷰 발췌문>

 

 

Q. 이달의 농구선수로 선정되셨는데 소감은?

A. 너무 익숙한 일이라 새롭지도 않다.

Q. 미국에 와서 제일 놀랐던 건?

A. 연봉. 최고다. 그리고 쓰레기통. 일본은 날짜별로 분류해서 쓰레기를 버린다. 그래서 자취할 때 고생했는데. 여긴 한 번에 버려서 좋다. 이런 줄 알았으면 진작 미국 오는건데.

 

Q. 특별히 미뤘던 이유가 있나?

A. 학교도 그렇고, 기본적인 영어도 공부해야 했고. 잃어버린 게 있어서 그걸 찾기가 좀 힘들었다. (뭔지 물어도 되나?) 별 거 아니다. 중3때 일기장.

 

Q. 꽤 소중한 일기였나 보다. 지금도 일기를 쓰나?

A. 안 쓴다. 일기장이라고는 했지만 웃긴 얘기 들으면 적어두고 그러는 메모장이나 다름없었다. 그 무렵 때 학교에서 인간쓰레기, 안 타는 쓰레기라고 불리던 애가 있었다. 걔한테 넌 대형쓰레기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게 웃겨서 적어놨었다. 그런데 친구들은 그게 왜 재밌냐며 이상한 눈을 한다.

 

Q. 첫사랑과의 교환일기라도 되는 줄 알았다.

A. 동기부여의 목적이라면 이쪽이 훨씬 더 좋다. 쓰레기는 되지 말아야지, 하면서 점수 1점이라도 더 따려고 애쓰게 되니까.

 

Q. 고마운 친구다. 그 친구에게 한마디.

A. 소설가인 K에게 들었는데. 타는 쓰레기는 태우면 재가 되고, 안 타는 쓰레기는 땅에 묻는다더라. 네가 안 타는 쓰레기라 다행이다. 땅에 묻어도 50년은 거뜬하다니 어딘가에서 분명 잘 살고 있겠지만. 조만간 일본으로 돌아가면, 얼굴 한 번 보고 싶다.

 

한 번은 웃느라, 한 번은 화가 나서 하려던 말을 번번이 못했었는데.

그 이후로 가끔. 너를 떠올린다. 어디에 있든 네가 지금도 잘 지내고 있었으면 좋겠다.

 

 

 

귓가에 웅성이는 소리와, 누군가의 외침이 시끄럽게 뒤섞였다.

안내방송 스피커에서 나오는 침착한 목소리와 함께

지하철이 다가오는지 바람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그 사이를 가르고 그립게 울리는 규칙적인 소음.

커다란 체육관에서, 공이 튕기는 소리.

심장과 같은 박자로 점점 크게 울리다 뚝 끊겼다.

 

‘1on1 할래?’

 

어린 목소리의 부름에 하이자키는 무거웠던 몸을 거짓말처럼 일으켰다.

최면에서 풀리듯 훌훌, 걸음도 가벼웠다.

하이자키가 구둣발로 내딛은 곳은 테이코의 체육관이었고,

기다렸다는 듯 까무잡잡한 피부의 남학생이 씨익 웃으며 농구공을 던져왔다.

공을 안 잡은 지 몇 년이나 흘렀지만, 쉽게 받아들었다.

하이자키는 공을 끌어안은 채 메마른 입술로 상대를 불렀다.

 

‘다이키.’

 

스스로의 목소리가 어색해 얼굴이 달아올랐다.

고개가 점점 아래로 떨어질 즘,

다정한 대답이 돌아왔다.

 

‘응, 쇼고.’

 

커다래진 아오미네가 자줏빛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하이자키가 훌쩍 공을 던졌다.

미련을 남길 새도 없이 그물을 통과했다.

 

‘다음에 또 농구하자.’

 

아오미네가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하이자키는 푸른 재가 되어 가라앉았다.

 

 

이상한 꿈이었다.

급히 숨을 들이키며 눈을 뜨자, 아직 일본으로 가는 비행기 안이었다.

승무원에게 물을 부탁한 아오미네는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잿빛 구름 너머로 푸른 새벽이 밝아오고 있었다.

 

리본

 

 

 

 

"아오미네군의 생일선물은 준비 하셨습니까?"

 

쿠로코가 자신의 앞에서 빨대로 장난치는 하이자키를 보며 언제 나와 같은 느긋한 어조로 물었다. 그러자 하이자키는 건들이던 빨대를 내려놓고는 내가 고개를 미간을 찌푸렸다. 

 

"하ㅡ아? 다이키의 생일선물?"

 

내가 그걸 왜? 라는 뉘앙스가 가득 느껴지자 쿠로코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 쿠로코의 태도에 하이자키의 미간이 꿈틀거렸지만 입을 다물었다. 스스로도 찔리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었다. 결국 쿠로코의 눈빛에 못이긴 하이자키가 시선을 피했다. 고개를 돌린 채로 턱을 괸 채 귀찮다는 듯이 혀를 찼다. 그런 하이자키의 모습에 쿠로코가 다시 한숨을 쉬고는 입을 열었다. 

 

"애인의 생일선물을 챙기는 게 보통이니까요."

"....다이키가 애도 아니고..."

"애가 아니더라도 애인이 준비한 생일선물을 마다하는 애인은 없지요."

 

하이자키가 낮게 신음했다. 테츠야와의 이런 대화는 자신이 불리했다. 아니 테츠야랑의 대화에서 자신에게 유리했던 적도 없지만..생일선물....생일선물이라....사실 고민하기는 했다.

농구에 죽고 못 사는 농구바보에게 어울리는 새 농구공이나 실컷 뛰어다닐 녀석을 위한 농구화라던가. 다이키가 좋아하는 그라비아 배우의 사진집이나? 이것저것 생각은 났지만 딱 이거다! 하는 게 없었다. 그걸 테츠야에게 미주알고주알 떠들기는 어째 입이 자꾸 무거워져서 아무 말도 못하고 있지만...

 

"...테츠야. 넌 뭐로...준비 했냐?"

 

슬쩍 떠보는 말투긴 했지만 테츠야는 자신의 속셈을 다 알아챘을 테니 쪽팔리긴 했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얼굴에 두꺼운 철판을 깔기로 했다. 안 쪽팔려. 하나도 안 쪽팔려......라고 속으로 중얼거리며 마인드 컨트롤을 하려 했지만 역시 쪽팔리긴 쪽팔려서 얼굴에 열이 올라 귀 끝이 뜨거웠다. 

쿠로코는 그런 하이자키를 가만히 바라보다 자신의 바닐라쉐이크를 쪼옥 빨아들였다. 할 말은 많았지만 참기로 하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비밀입니다. 뭐 하이자키군의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요."

 

아오미네 다이키. 세계적으로 유명하고 유명한 농구선수의 이름이자 자신의 첫 번째 빛이자 자신의 눈앞에 있는 하이자키 쇼고의 연인인 이의 이름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식을 줄 모르는 인기 때문에 돈도 넘치게 있었고 그가 좋아하는 농구공도 농구화도 굴러다닐 정도다. 중학생부터 스스로가 농구화를 모으는 편이기도 했고 프로가 되서는 팬들이 선물하거나 친구들의 선물 받은 것으로 가득하다 못해 굴러다닐 정도라고 했다. 물욕 적이지도 않은 자신의 친구는 원하는 것도 적었고 가지고 싶은 것도 그다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눈앞의 있는 하이자키가 연인인 아오미네의 생일선물을 고르는 것이 골치 아플 것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그가 진정 원하는 것을 정말 모를 리는 없는데 눈 가리고 아웅인 그를 보니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자신들의 연애니 모른 척 하기로 했다.  

 

"생일선물 좋은 게 있지 않습니까."

"좋은 거?"

 

어느새 텅 비어버린 컵을 내려놓으며 쿠로코가 입을 열었다. 하이자키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따라 입을 열었고 쿠로코는 최근 아오미네와 나눴던 대화를 떠올리며 마저 답했다. 

 

"너요. 리본이라도 달아서 선물이라고 해보시죠. 아오미네군 좋다며 달려들 거 같은데."

"...테츠야...날이 더워서 미쳤냐?"

 

저는 지극히 정상입니다 라며 하이자키의 머리를 살짝 내리친 쿠로코가 마지막 말을 덧붙이고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 메이드가 리본을 걸면 오늘 밤 주인님 마음대로 하세요. 라는 의미도 된다더군요. 아오미네군이 좋아할 것 같지 않나요? 」

 

개소리. 누가 다이키 친구 아니랄까봐...

결국 쿠로코의 만남으로도 별 소득을 얻지 못한 하이자키가 머리를 거칠게 헝클듯 헤집었다. 귀찮다고 포기하고 싶지만 주지 않으면 얼마나 귀찮게 굴지 상상도 안 갔다. 별로 생각도 안하면서 서운하다 섭섭하다며 괴롭힐 것이 뻔했기에 착잡해진 하이자키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익숙하게 불을 붙였다. 하이자키의 머리색과 같은 회색빛 연기가 하늘하늘 올라갔다. 

 


"선물. 선물 뭐로 해야 하지..."

 

아무리 생각해도 생각나는 것은 없었다. 그래도 테츠야가 말한 건 하기 싫었다. 쪽팔리게 다 큰 남자가 리본을 달라고? 으....생각만 해도 소름 끼쳤다. 아직 다이키 생일까지 이틀 정도 남았다. 그 동안 생각이 나겠지......

 

 

**

 

결국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젠장.....이제 다이키는 생일 당일은 휴가를 얻기 때문에 그 전날이 가장 바빴다. 다이키가 집으로 오기까지 앞으로 2시간 점점 초조해졌다. 그 때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은.....테츠야의 말이었다. 

 

"후.....그래...생일....애인....생일....이니까.....아..씹 못하겠어...."

 

눈물이 날 것 같은 기분이었다. 파란색 리본을 손에 쥔 채로 한참을 고민하고 고민하다 겨우 착용했다 머리에 묶었더니 이대론 뒤질 거 같아서 목 뒤에 리본을 묶었다. 눈앞에 보이지 않으니 좀 나은 것 같기도 해서 거울 보며 미소 지으며 대사연습을 했다. 뭐 물론 1분 만에 현타가 느껴져서 포기했지만. 그래. 리본도 엄청난 용기를 낸 거니까...

 

 

시간은 흘러 흘러 다이키가 올 시간이 되었다. 

키 번호를 누르는 소리.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 자신을 부르는 다이키의 목소리.

 

"쇼고. 어디 있어?" 

 

점점 가까워지는 다이키의 목소리에 얼굴에 열이 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아. 얼른 끝냈으면 싶으면서도 마주치고 싶지 않은 그런 느낌. 후우....길게 숨을 내쉬었다. 이제는 도망 갈 수도 없다. 자신이 있는 방의 문 까지 열어 들어온 다이키의 눈동자와 내 눈동자가 마주쳤다. 후끈한 얼굴이 느껴져서 더 부끄러웠지만 억지로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힐끗 시간을 보니 어느덧 자정 다이키의 생일날이 되었다.

 

"Happy birthday Daiki."

 

떨리는 목소리가 더 쪽팔릴 것 같아 목소리에 힘을 줬다. 다이키는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곧 특유의 장난스러운 미소를 걸며 자신에게 성큼성큼 다가와 허리를 끌어안았다. 곧 입술끼리 부딪힐 만큼 가까운 거리에 헉 소리가 나올 뻔하다 간신히 삼켰다. 

 

"선물은 나- 같은 거야?"

"그래. 선물은 나.  다이키 네 생일이니까."

 

금방이라도 부딪힐 듯 한 입술을 자신이 먼저 움직여 다이키의 입술에 쪽 입 맞췄다.

 

"오늘은 네 마음대로 해도 돼."

"딴 소리하기 없기다."

 

다이키의 미소를 보니 쪽팔리고 부끄러운 건 아무렴 어때 싶어져서 능글맞게 웃는 그에게 시끄럽다고 말하며 다이키의 목에 팔을 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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